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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by  game  2020. 11. 9.

1. 하나님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전제돼야 할 것은 우리들은 하나님이 들어내시는 만큼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부분에 있어, 하나님께서 들어내시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알 수 없다. 4차원에서 3차원으로 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3차원에서 4차원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이상 더 알아가려고 한다면 교만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전제로 시작해야 된다고 본다.

 

 

 

또한 분명히 하고 가야할 것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타종교의 하나님의 구분이 명확히 있어야 한다. 타종교의 절대자와 기독교의 절대자가 같다면 뚜렷한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간단한 차이점을 본다면 타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서 정성을 드리고 무엇을 얻어내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고, 댓가 없는 사랑을 주신다. 타종교는 영생에 대해 다루지 않지만, 기독교는 영생을 바라며 나아가는 생명의 종교이다. 또한 기독교는 타 종교와 달리 육신을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보고 있으며,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믿고 있다. 끝으로 어느 종교도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죽음을 선택한 종교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정말 누구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다. 누구를 만나든지 상대방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해 설명한 구절들이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말씀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신명기 435~39에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열왕기상 823절과 60에는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하고 있고, 하나님 또한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사야 4310~11에는 하나님께서 자신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고 후에도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쉐마라고 불리는 신명기 64 역시 유일하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 성경에 근거한다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먼저 있거나, 위에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같은 일반계시를 통해 알아갈 수도 있고, 성경과 같은 특별계시를 통해서도 알아갈 수 있다. 자연계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는다면, 하나님이 누구냐가 아닌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될 것이며, 이성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특별계시 역시 믿어지게 되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요소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를 성의 개념으로 이해하곤 한다. 아버지와 같은 남성상을 같거나, 권위적이고, 강한 이미지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닌, 뿌리로써 즉, 근원적인 의미에서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망가뜨리시면서 까지 이 세상에 오셨다. 인간들과 소통하기 위해 왔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과 소통하지 않고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면 결국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다.

요한복음 151절에는 하나님을 농부, 예수님을 참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인간은 나뭇가지이기 때문에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지만, 더 잘 자라기 위해서는 농부에게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늘 의지하고 나아가야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2. 인간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을 빼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 지음 받았으며, 둘째,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과 떨어진 상태에서는 깨끗해 질 수가 없다. 하나님의 형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같은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신과인간 그리고 악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해 말할 때 절대로 하나님 없이 시작할 수가 없다.

그럼 이제는 인간은 무엇인지, 누구인지에 관한 답을 찾도록 하는 것은 그 다음일 것이다. 인간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이유는 결국 하나님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먼저, 창세기 126~28절에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있다고 나와 있으며, 창조된 인간은 우주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시듯, 인간도 우주를 다스릴 권한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다스린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정의가 없고, 사랑이 없으며 억압과 착취로 변질된 다스림이 아닌, 하나님과 같이 사랑으로 다스림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인간에게 축복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해 지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창세기 24~9절을 보면 사람은 땅과 흙에 의해서 그리고 생기에 의해서 생령이 된다. 생령은 흙과 생기로 볼 수 있으며, 호흡을 하는 생명체로써 살아있는 영이다. 이것은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창세기 215~25절에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담과 그의 갈비뼈로 만든 하와는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고 있다. 하나님은 서로 돕는 관계로써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지만, 둘은 악을 도모하는 관계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한 몸이라 함은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갖고 살라는 의미이지만, 선악과 사건 이후로 한 몸이 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그러나 한 몸이 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는 한 몸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같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부부로 살 때에도 더욱더 같은 마음 같은 뜻을 지니고 살도록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에 제시한 인간에 대한 3가지 특징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인생의 숙제이다. 이것들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결국 참다운 인간상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실존의 근거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을 창조하지 못한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선택할 수도 없다. 사도행전 1728 말씀에 보면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라는 말씀을 토대로 인간 개개인의 삶은 하나님의 실재라는 맥락 속에서 생겨남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기원으로써의 하나님과는 분리 된 채로 살아갈 수 없으며, 이것이 지속 될 경우 처음 인간으로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3.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삼직무론을 먼저 알 필요성이 있다. 각각의 역할들을 이해함으로써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또 그분께로 나아갈 수가 있다.

삼직무의 첫 번째 직무는 제사장이다. 히브리서 724 말씀에는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사장으로써 인간들을 하나님께로 이끌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한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이 화합하도록 그 장을 마련하셨다.

두 번째 직무는 왕이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나라의 왕들은 자기가 가장 위였고, 존경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서로 왕이 되려고 싸우는 것이 비일비재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아지는 것을 택하셨다. 스스로 높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높이며 나아갔다. 왕은 한분 하나님 밖에 없음을 외친 이 세상에서의 왕이었다.

마지막 직무는 예언자이다. 야훼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이다 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말씀을 외치셨다. 때로는 여러 사건들을 예언하시며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해 내셨다.

이것들이 간략하게 정리한 예수그리스도의 삼직무이며, 이것들을 통해 예수님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다.

요한복음 11~4에는 예수에 대해서 설명되어 있다. 그는 태초부터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빛으로 오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후에 따로 창조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9절에서는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음을 말한다. 이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실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참 하나님이 아닌 참 인간이시기도 한 예수님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의문이 생긴다. 히브리서 214~17절 말씀에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한 것처럼,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다고 하고 있다. 인간으로 오신 이유는 마귀를 멸하시고,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이다. 인간이 아니면 인간을 대속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가 참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예수 자신이 참 인간이고, 따라서 모든 인간의 모범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성의 계시로써, 인간들이 가져야 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원하셨던 모습을 인간 예수를 통해 나타내신 것이다. 부활에 측면에 있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부활이 적용되는 것이지, 단순히 신이기만 한다면 죽음이 없기 때문에 부활도 없다.

요한복음 46~7말씀에는 예수께서 목이 마르다는 표현을 하심으로써 인간들이 느끼는 육체적인 필요를 같이 느끼셨음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 41~11말씀에는 세례를 받은 후 마귀와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귀는 하나님에게는 대적할 수 없다.

그러나 히브리서 415말씀인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는 내용을 통해 철저히 인간의 원죄론과는 관계가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적인 마음, 인간적인 고통으로는 예수님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해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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